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H. R. 맥마스터 (문단 편집) === 야전에서 === 1984년 [[미국육군사관학교|웨스트포인트]]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. 육사 시절엔 럭비를 했다고. 1991년 육군 대위(제2기갑기병연대 전차중대장) 시절 [[걸프 전쟁]]에 참전하여 부상에도 불구하고 단 9대의 전차만으로 이라크 최정예 공화국수비대 타와칼나 기갑사단 소속 전차 80여 대를 무찌르는 눈부신 전공을 세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. 당시 전투는 '73 이스팅 전투'(Battle of 73 Easting)로 불린다. [[http://en.wikipedia.org/wiki/Battle_of_73_Easting|#]] [[이라크 전쟁]]에도 기갑장교로 참전하였는데, 2005년 제3기갑기병연대장으로 참전했던 [[탈 아파르]] 전투에서 미군으로서 보기 드물게 이라크 현지인들과의 친화력을 기르는 대민친화정책을 펴며 탈 아파르에서 [[알 카에다]]를 축출하기도 했다. 기존에는 미군은 위험한 도시 내에서는 순찰만 하고 저녁에는 외부 기지로 귀환했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이 적에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협조하지 않았다. 그런데 맥마스터는 미군을 [[탈 아파르]]에 주둔시켜 야간에도 철수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지역 주민들에게 인식시켜 주민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. 다만 이 과정에서 상부의 지휘/명령 체계와 마찰을 빚으면서 [[도널드 럼즈펠드]] 등 당시 펜타곤 수뇌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, 이로 인해 2006년과 2007년에 장군 진급심사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. 피트 게렌 [[육군부|육군청장]]이 평소 그를 높이 평가하던 [[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]] 장군을 소환해서 2008년 세번째 진급심사에 배석시켜서야 겨우 진급이 승인되어 2009년 준장이 될 수 있었다. 이후에도 육군 [[높으신 분들]]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, [[미국-아프가니스탄 전쟁]]에 갔다온 뒤 2011년 소장 진급심사에서도 1차에서 탈락했다. [[마틴 뎀프시]] 합참의장이 "우리 준장들 중 얘가 최고인듯"이란 발언까지 했는데도 겨우 2차에서야 진급심사를 통과했다. 이후 교육사령부 관련 보직들을 거치면서 경험을 쌓다가 2014년에는 [[척 헤이글]] 국방장관이 밀어주며 중장 진급이 확정되어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